- [단심가丹心歌]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
정몽주(字 達可, 號 圃隱)는 영천永川 출생으로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죽음으로써 절의節義를 지킨 충신이다. 즉 고려말 조준趙浚, 남은南誾, 정도전鄭道傳
등이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李芳遠(훗날
太宗)이 何如歌로 정몽주의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그는 丹心歌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음을 말하며 절의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이방원은 부하 조영규趙英珪 등을
시켜 개성 남쪽의 선죽교善竹橋에서 정몽주를 철퇴로 내리쳐 죽였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조선시대(1401년)에 권근權近의 청을 받아들인 태종太宗이 정몽주에게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수문관대제학修文館大提學 예문춘추관사藝文春秋館事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을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려 정몽주의 충절이 인정받게 되었다.
정몽주는 충신으로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되는데 고려말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성리학 보급에 앞장섰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사회윤리와 도덕의 합리화를
기하며 개성에 5부 학당學堂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하는 한편 《대명률大明律》을
참작, 《신율新律》을 간행하여 법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침입해오는 왜구와 여진족을 물리쳤고, 명明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세공의
삭감과 5년간 미납한 세공을 면제받고 긴장상태에 있던 대명관계를 해결하였다. 일본에서는
왜구의 단속에 대한 확답을 받고 왜구에게 잡혀간 백성을 구해오는 등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길을 택한 정몽주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포은 정몽주 선생은 -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 말 대표적인 문신 겸 학자로 단심가(丹心歌) 등 곧은 절개를 표현한 것 외에 선죽교에서 격살된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이다.
최근 들어 포은 선생의 출생지에 대한 논란이 여러 차례 제기되어 다시금 현장을 찾아보고 기록을 살펴보았다. 기존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정몽주 선생에 대해 시호는 문충(文忠),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게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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