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16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21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김영승(1959~ )
인간의 음료 중에 술만큼 쓴 건 없다. 이 쓴 걸 왜 마시나. 술 아니면 안 되는 어떤 갈증이 있다고 할 수밖에. 백수의 사색, 백수의 반성, 즉 백수의 탄식이 그를 술마시게 한다. 도대체 백수가 왜 반성씩이나 해야 하느냐고 묻지는 말자. 모든 것을 포기한 불굴의 의지가 일어나 홀연 소주병을 따는 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는 저 통렬한 자기 풍자에 기대어 처연한 킬킬거림 속에서 한 시대의 비루함을 꿰뚫기도 하고 어루만져주기도 하였다. 술독에 빠져서도 술을 찾는 이유를 머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술 먹자. 눈 온다...," 우리의 젊은 날은 저 대책 없는 목소리에 의해 대책 없이 위로 받았다. 백수계의 전설이 된 이 '아름다운 폐인'을, 인천의 어는 상가(喪家)에서 지난달 우연히 만났다. 술 끊은 지 십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하지만 어쩐지 좀 슬프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이영광.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