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자전거
꼬치전이 알록달록하다.
햄 먼저 끼고,
그 다음 파도 키 맞춰서 끼고,
맛살도 빨간색이 앞으로 나오게 맞추고,
아내는 혼자 계시는 아버지 드리겠다고
추석 음식을 장만한다.
잡채에, 빨강 고추장 바른 더덕무침에, 얼큰한 두부찌개, 김치, 꼬치전, 또~오..........
뭐 도와 줄까~?
꼬치전 음식 요리에 경험이 없는 나를 먼저 가르치는게 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꼬치전 요리를 해 본다.
코로나 19 거리두기로 추석날 전에
아버지에게 다녀 오기로 했다.
아버지는 집에 안계시고,
아내가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 계실만한 곳으로 찾아 나선다.
벼타작 한 논에 벼이삭을 줍고 계신다.
아버지~이~ !
엉 ~ 난 누구라고 ~
언제 왔니 ~?
예~~ 아까 ~ 왔는데 집에 안계시길래에~~~
집에 가셔요 ~ 점심 드셔야지요,
아버지 땡볕에 쉬엄쉬엄 하세요,
아버지는 벼이삭을 자전거에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가신다.
저 만치 타고 가시다가 내려서 쉬었다가 또 자전거를 타고 가신다.
고관절이 불편 해서 많이 못가신다.
그렇게 몇번을 쉬었다가 집에 도착 하신다.
나는 이세상에 태어나 아버지의 첫 기억이
자전거와 두통약뇌신이다.
내 어릴적 기억은
아버지는 집에 계시면 항상 뇌신을 드셨고,
밖으로 나가시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오랫동안 보셨는데,
지금처럼 집집마다 자가용이있는 세월이 아니라서,
동네 일 보실때나, 면사무소를 가실때는 항상 자전거를 끌고 나 가셨다.
직업이 농업인 아버지는 농사 일은 엄마에게 위임 하고,
낮에는 자전거와 함께 밖으로 나가시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농사 일은 아버지 보다 엄마가 더 잘 하셨다.
동네 일 때문인지 ~?
가난한 시절의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종가집 가장의 먹고 사는 무게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시절에는 집에만 계시면 아버지는 뇌신을 드셨다.
그 뇌신이 아직도 약국에서 판매 하던데,
뇌신의 역사도 참 오래 된것같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에게
용돈 받아 본 기억은 별로 없고,
할머니가 조금씩 용돈을 주신 기억이 난다.
할머니에게 받은 그 용돈으로
학창시절 친구에게 몇천원의 중고 자전거를 사서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아버지는 90세가 넘으셨는데
아직도 쉬엄쉬엄 자전거를 타신다.
나도 요즘 취미 생활로 라이딩을 한다.
선선하고 푸른 하늘에 흰구름 흘러 가는날,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버지와의 추억을 위해서,
아버지와 자전거 라이딩 한번 할까~?
인생역전이란 ?
이 세상에 올때는 나만 울고 주위에 모든이가 웃었다 한다.
이 세상을 떠날때에는 나만 웃고 주위에 모든이가 울어야하는데 ~~~~~
아버지,
자전거,
뇌신,
2021년 9월 19일